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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와 민들레

/산귤림

 

 

 

 

 쏴아아아... 비가 내리던 그 날밤, 번쩍하는 번개와 함께 나는 이불에 들어가 있었다. 아버지는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는 이유로 나를 홀로 두었다.

 

'..- --- -- - .. --- - -----….'

'---- --- --..'

 

 빗소리 사이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아버지와 낯선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 이 촌동네에서는 흔히 들을 수 없었던 소리다. 누구일까? 나는 괜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문밖에서 들리는 잔잔한 아버지의 목소리. 그리고 달칵, 소리와 함께 열리는 내가 엎드려 있던 방문, 켜지는 주광색 전등. 아버지는 알 것이다, 이렇게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한다는 것을.

 

“... 안 자고 있으면 나와서 인사드려.”

 

 나는 아버지의 말에 슬그머니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보이는 이는 밖에 비가 와서일까, 양복에 물방울이 살짝씩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물기 덕에 알밤 같은 색의 반짝이는 머리카락, 그리고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 남자의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 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오는 손님이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그저 동네 아저씨가 우리 집 잠시 들르러 오는 거로 생각했었다. 예를 들면 저기 논을 등지고 있는 집에 사시는 강 씨 아저씨는 우리 집에 종종 수박도 나누어주고, 반찬도 나누어주어 맛있게 먹지 않았던가? 내가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아리송하게 있자, 그 남자는 푸핫, 하고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야, 문대문대. 어떻게 이렇게 너랑 똑 닮은 애를 낳았냐. 너 혼자 낳은 거 아니야?”

“애 앞에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안녕? 네가 문대 아빠 딸이야?”

“... 네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대체 누군데 우리 아버지 이름을 아는 거지? 나는 당황스러운 눈을 끔뻑거리며 아버지와 이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 사람 덕일까, 아니면 천둥·번개가 무서워서였을까, 덕분에 졸음이 날아가 버렸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조금 불만족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고 내게 말했다.

 

“이쪽은 이세진이라고, 아빠 친구야. 앞으로 이 집에서 지낼 식구고.”

“맞아~ 오늘부터 같이 지낼 거야. 삼촌 선생님이라서 공부도 알려줄 수 있겠다. 그치 문대문대~.”

“…그래. 어차피 여기서 오랫동안 머물 건데 그러면 좋겠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버지는 항상 격려하듯이 내게 잘한 점이 있다면 칭찬해주었고, 이렇게 가끔 내 뒷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주실 때면 항상 기분이 좋아졌다. 표현은 많이 없으셨지만 이렇게나 다정한 아버지가 좋았다. …삼촌도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좋아서 아버지와 친구가 된 걸까? 나는 삼촌과 아버지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모습을 바라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눈을 감았다.

 

*

 

 그렇게 삼촌이 우리 집에 있던 남은 사랑방에 머물던 비가 내리는 며칠 간이었다. 삼촌은 언니 오빠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라고 했었지. 아버지는 그런 삼촌을 위해 삼촌이 학교에 간 사이 멜론도 자주 사러 시내로 나가셨다. 삼촌은 항상 나를 아껴주었고, 아버지가 주시는 적은 애정 표현과는 달리, 나를 과도한 애정으로 보듬어주셨었다. 그 덕에 우리는 쉬이 친해질 수 있었으며 매일 저녁밥 먹기 전 서로에게 장난을 치곤 했었다. 늘 우리의 뒤에선 아버지가 피식 웃으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셨지만.

 만일 나의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세진 삼촌과 같았을까? 창가에 의자를 두고 그곳에 올라서서 나는 창틀에 턱을 괴고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비구름에서 내려오는 비를 구경하는 중이라 이상한 생각도 계속 드는 건가? 이 지긋지긋한 비는 언제까지 올는지. 괜히 한 번 아리송하게 고개를 갸웃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삼촌은 선생님이니까 내 마음 알아챘으면 좋겠어.”

 

 작게 중얼거린 속마음. 그리고 나는 아무래도 삼촌이 점차 나의 어머니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 중이었다. … 혹시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삼촌한테 얘기하면 삼촌은 어떻게 반응할까? 친구네 부모님들은 서로 사이가 좋던데…. 우리 아버지하고 삼촌도 친구니까 친하겠지? 어떻게 하지…. 홀로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고 있던 찰나, 저 멀리 주방에서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 그만 구경하고 밥 먹어라.”

“네에.”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후다닥, 달려가 식탁 앞에 앉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김치와 같이 기본적인 밑 반찬과 도라지, 고사리, 쑥갓 등 갖은 나물 반찬들. 그리고 식탁의 중앙에 있는 굴비는 고소한 비린내를 풍겼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식단이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쳐다보니, 뚱한 얼굴로 나의 얼굴이 아닌 나의 뒤에서 걸어오는 삼촌을 바라보며 말했다.

 

“삼촌이 너 먹이겠다고 사 왔어.”

 

 삼촌이? 이걸?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떡해, 날 위해서 사 왔대! 입꼬리는 참을 수 없이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고, 너무도 좋은 감정에 붉어지는 양 뺨은 불가항력이었다.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노릇이 구워진 굴비가 점차 내가 갖고 싶었던 장난감과 같은 급으로 보였다. 심지어는 굴비가 양복을 입고 맛있게 먹어달라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삼촌께 맑게 웃으며 꽉, 안아주곤 품에 얼굴을 비볐다.

 

“아이코.”

“…삼촌 진짜 너무 좋아요. 최고예요.”

 

 갑작스럽게 안아온 상황에 삼촌은 눈을 끔뻑거리다 하하! 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나를 들어 올려 안아주었다. 아버지가 안아주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껴안아 진 체 삼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삼촌이 우리 엄마 했으면 좋겠다고. 그러자 삼촌은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귓가와 볼이 살짝 붉어지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면 안 돼…. 라며 말했다. 치, 아쉽다. 나는 볼을 살짝 부루퉁, 하게 있다가 이후 아버지의 말에 삼촌의 품에서 내려와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

 

“잘 가! 다음에 보자.”

 

 유치원에 다녀오는 길. 오랜만에 볕 든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따듯한 공기가 제 몸을 감싸 안고, 들꽃들이 하늘하늘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움직이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친구와 헤어지고 홀로 집에 가던 중, 주황빛이 선연히 감도는 탐스러운 꽃을 보게 되었다. 그 아름다운 능소화나무는 메마를 수 없을 정도로 싱그러움을 품고 있었다. 여름의 막바지라서일까, 넝쿨에 매달려있는 능소화를 보고 있노라면 매미가 우는 소리가 시끄럽지 않다고 생각이 되기도 했다.

 … 전날에 보니까 엄청 사이좋아 보이던데. 나는 어젯밤, 삼촌을 처음 만난 날과 같이 비가 쏟아지며 천둥·번개가 우르릉, 하고 쳐 잠을 잘 수 없던 밤이었다. 쏴아아, 여전히 비는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삼촌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삼촌의 방으로 향하던 나는 전등불이 켜져 있는 삼촌의 방, 그리고 들려오는 아버지와 삼촌의 말소리였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 거지? 호기심이 생긴 나는 숨을 죽이고 문 뒤에 서서 서로 나누는 말소리를 들었다.

 

“이세진.”

“문대야, 너 애 앞에서는 모르는 척하는데 다 티 나는 거 알아?”

“... 그 얘기가 아니잖아.”

“그럼 무슨 얘긴데?”

“네 말대로 애도 있는 사람한테 와서 이러고 싶냐?”

“나 보고 싶었다며.”

 

 조용히 나뉘는 이야기. 삼촌의 목소리는 조금 불퉁한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도 어리광을 부리나? 라는 생각에 조금 눈이 동그래졌다. 서로에게 조금씩 애정이 섞여 있는 듯한 목소리, 이불이 서로 쓸려 뒤척이는 소리도 들렸으나 점점 거세지는 빗소리에 잘 들리지 않아 엿듣던 난 그대로 들고 온 베개를 껴안고 그 앞에서 까무룩 잠자리에 들고 말았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아침, 어째선지 아버지의 품에서 깨어났었다. 아버지가 날 발견하셨던 걸까? 아침부터 한 소리 듣긴 했어도 왠지 날 걱정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손에 든 능소화. 집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 지금 잔뜩 따서 아버지께 갖다 드리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삼촌이 드리라고 했다면 더 좋아하실까? 서로 좋아한다고 어제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나는 조그만 머리를 굴려서 우선 잔뜩 따가기로 판단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받으면 더 좋으니까! 똑, 똑. 능소화가 연결된 넝쿨과 함께 떨어지고, 내 자그마한 품 안에는 진한 능소화 향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모습은 어떨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괜히 뿌듯해져서 방긋 웃으며 아버지께 달려갔다.

 

“아버지!”

 

 나는 손도 씻지 않은 채 신발을 아무렇게나 현관에 던져놓고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방에 계셨으며 그 방 안에 있던 옷장에서 아버지보다 훨씬 큰 양복을 들고 바라보고 계셨었다. 왠지 인상을 쓰던 아버지의 표정이 보였던 것 같았으나, 이내 나를 보고는 다시 옷장에 집어넣고 나에게 다가오셨다.

 

“웬 꽃이야.”

“그러니까, 그. 삼촌이! 아버지께 드리라고 유치원 다녀오는 길에 만나서 받아왔어요. 예쁘죠?”

 

 아버지는 그 말에 말문이 턱, 막히셔서 말을 못 하시더니 천천히 내가 건네는 꽃들을 건네받았다. 아버지의 두 손 가득 담은 꽃들. 그리고 그것의 향기를 맡는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귓가와 볼, 그리고 잘 보이진 않았지만, 목덜미도 빨개지셨다. 은은하게 방 안을 가득 채운 능소화의 다디단 향은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물론 내 선물을 맘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더욱 기분이 좋은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내 헛기침하시더니 방긋 웃고 있던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여셨다.

 

“... 그래, 예쁘네.”

“그렇죠?”

 

 아버지는 꽃을 침상 위에 두고 나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오늘 저녁은 무얼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시며 거실로 나갔다. 아버지가 점차 삼촌이 온 이후로 달라지는 기분이다. 표현도, 표정도 다양해지신 것 같고, 삼촌과 엇비슷하게 말씀하시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점도 삼촌 덕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까 더욱 삼촌이 좋아졌다. 삼촌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아버지, 비는 언제 그쳐요?”

“이건 장마라고 하는 거야. 여름에 오랫동안 비가 오는 거.”

“너무 많이 오는 거 아니에요?”

“… 괜찮아.”

“왜요?”

 

 나는 능소화를 따온 날과 달리 덥고 습하고 비가 내리는 여름밤에 아버지와 같이 잠을 자게 되었었다. 내가 밖에서 홀로 까무룩 잠들었던 그 날 때문일까, 비가 오는 날의 밤이면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주시는 아버지셨다. 오늘부터 이렇게 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투는 투박하기 짝이 없다고 말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겐 물론 너무도 큰 다정이기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본인의 품에 안겨있던 나의 아리송한 말투가 묻어있는 질문에 잠시간 말없이 미소를 띠시며 내 뒷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나는 그 손길이 좋아서 무심결에 얼굴에 방긋한 미소를 띠었다. 누군가 아버지와 나의 모습을 본다면 똑 닮은 아버지와 자식이네, 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

 

“아기는 알 필요 없어.”

“그렇구나.”

 

 그래, 난 아기니까. 음, 어른이 된다면 아버지나 삼촌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것도 쉽게 알 수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의 방을 둘러보았다. 저번에 능소화를 건네줄 때와 조금 달라진 아버지의 방. 그 안에는 단출하게 아버지가 공부하시는 책상과 책장, 옷장, 서랍장, 침대가 존재했다. 이것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겠지만, 달라진 점이란 큰 항아리 같은 물병에 동동 띄워져 있는 능소화 꽃봉오리들일까.

 아버지는 삼촌을 투덜거려도 정말 좋아하시나 보다. 평소 같았으면 말려서 책갈피로 사용하셨을 텐데, 이렇게 오래간 생화로 보시려고 하는 모습에 조금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내가 그 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서 뺨을 살짝 붉히며 작은 헛기침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옆에서 보였다. 쑥스러우신 걸까? 괜히 나도 같이 기분이 이상해짐에 나는 활짝 웃기만 하였다.

 

“아버지, 삼촌하고 계속 같이 살면 안 돼요?”

“안돼.”

“왜요?”

“... 이것도 아기니까 알 필요 없어.”

“그렇구나.”

 

 이것도 어른이 되면 알 수 있겠지. 아버지랑 삼촌이랑 나랑 같이 못 사는 거. 그렇지만…. 같이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너무 좋다. 앞으로도 쭈욱, 계속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다디단 능소화 향이 코를 간지럽히는 그 날밤은 신기하게도 악몽이나 천둥·번개가 무섭지 않았다. 비 덕분에 높아진 꽃향기가 어쩐지 삼촌 같았고, 내 곁에서 느껴지는 이 온기는 내게 맞설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버지에게도 내가 무서운 존재에게 맞설 용기를 주는 존재였으면 좋겠다. 작은 희망을 품고 잠자리에 드는 밤이었다.

 

*

 

“아버지께 가져다드려라.”

“네, 삼촌!”

“숙박비라고 말씀드리면 받으실게다. 알았지?”

 

 사랑방에 머물던 삼촌은 내 손에 작은 사탕 하나와, 작은 종이봉투 하나를 쥐여주시며 왼쪽 눈을 살짝 감았다 뜨셨다. 나는 당장에 사탕을 입에 넣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께 종이봉투를 배달해드렸다. 아버지는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얼떨결에 종이봉투를 받아드셨다.

 

“삼촌이 숙박비랬어요.”

“아,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어 보이셨다. 그러곤 안에 있는 종이를 확인하더니, 안색이 점점 굳는 것이 보였다. 무슨 내용이길래 그러시지? 삼촌이 이상한 말이라도 써놓은 건가? 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봤지만, 아버지는 손을 덜덜 떨며 종이를 뚫어져라 노려보실 뿐이었다.

 작게 삼촌 이름을 짓씹듯 중얼거린 아버지는 눈을 꾹 감고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누르셨다. 화난 듯한 표정. 이렇게나 화가 난 아버지의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수고했어.”

“네, 아버지.”

“좀 이따 부를 테니 그동안 밖에 나가서 꽃구경이라도 하고 있어.”

 

 나는 뒷동산에 올라 그곳에 있던 들꽃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건 개망초, 이건 딱지꽃, 이건 토끼풀, 저것도 토끼풀…. 꽃구경을 마치면, 들판 위에 드러누워 뛰노는 나비 두 마리가 얽혀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멍하니 구경했다. 나비도 짝이 있는데 아버지한테도 삼촌이라는 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이곳에 있으면 아버지가 날 찾기 힘들어할 거야! 조심조심 잔디가 가득한 동산 위를 짓밟아 달리며 집 뒤쪽에 도착하니, 열린 창문 밖으로 삼촌과 아버지의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뭐? 도망가자고? 미쳤냐?”

“그럼 어떻게 해? 이 촌 동네에서 영영 자식 하나랑 외롭게 살 거야?”

“어, 그럴 생각이었어.”

“박문대, 네가 먼저 나 좋다며.”

“착각하지 마, 이세진. 넌 내게 그저 내 누나의 친구일 뿐이었어.”

 

 소리 지르며 싸우는 삼촌과 아버지의 모습. 아무래도 삼촌의 편지에는 도망가자는 말이 쓰여 있었나 보다. 나는 너무 놀라 담벼락에 몸을 붙이고 우뚝, 굳어서 서 있었다. 삼촌도 내 마음과 같았구나. 근데 왜 아버지는 거부하시는 거지? 난, 도망가서 삼촌이랑 같이 사는 것도 좋은데.

 

“너야말로 네 생각만 하는 거 아니야? 너 혼자 다른 사람들한테 지탄받기 싫어서 이러는 거 아니냐고.”

“그래, 내가 이 ㅈ만한 촌 동네에 혼자 외간 남자랑 불륜 났다고 소문나기 싫어서 X랄 하는 거라고 하면 되는 거냐?”

“박문대!”

“나가, 더는 할 말 없다.”

 

 드르륵, 탁. 문이 열리고 닫힘과 동시에 조용해진 방 안에는,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분에 못 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창문 아래에 붙어서 삼촌을 떠올렸다. 왠지 며칠 내로 삼촌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리고 며칠 뒤 아버지가 종이가 든 손수건을 나를 통하여 삼촌께 전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아직도 싸운 것에 대해 화해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내 평생 듣지 못했을 정도로 화가 난 목소리셨고 점차 시간이 지나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벽에 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해가 질 때까지 서 있었다.

 손수건을 들고 사랑방에 도착하니, 삼촌은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옷가지를 넣으며 싸고 계셨었다. 처음 삼촌이 왔을 때 들고 왔던 그 커다란 가방에. 내가 아무리 어린애라지만 이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떠나려는 거구나. 이제 삼촌을 볼 수 없겠구나.

 

“삼촌, 이거, 아버지가….”

 

 평소와는 달리 머뭇거리는 나의 모습에 삼촌이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손수건을 받았다. 삼촌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나는 다급하게 내게 다가와서 눈가를 손으로 닦아주는 삼촌의 손길에 더욱 울컥하고 말았다. 울컥, 쏟아지는 눈물. 입이 벌어지며 입에서는 우는 소리가 나왔다.

 

“괜찮아, 괜찮아.”

“삼촌, 흑. 안 가면 안 돼요?”

“어?”

“안, 가면 흐윽, 안 돼요?”

 

 삼촌은 날 달래던 손길을 움찔, 하며 멈추더니 3초간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보다 손을 뻗어 제 가방에서 작은 곰돌이 인형을 가져왔다. 내 품 안에 쏙 안기는 크기. 얼핏 보면 그 인형은 삼촌과 닮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를 위해 준비한 걸까? 곰 인형을 바라보며 제 품에 안고, 삼촌의 표정을 보니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진지한 삼촌의 표정이 있어 나는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항상 장난스러운 웃음을 띤 표정만 보여주던 삼촌이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잠시간 이어지는 침묵 속에선 내 몸을 천천히 뜯어보는 시선이 존재했다. 그러곤 이어진 말.

 

“너 정말 박문대랑 똑 닮았구나.”

“...”

“세진 삼촌도 안 가고 싶은데, 문대 아빠가 가라고 하네. 문대 아빠는 세진 삼촌이 싫은가 봐.”

 

 삼촌은 씁쓸한 표정으로 나와 곰 인형을 바라보며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삼촌의 말에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삼촌이 가져다줬다고 하는 꽃을 너무도 소중히 아낀 나머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 꽃향기를 맡고 싶어서 항아리 안에 꽃을 띄워뒀던 걸 기억하고, 그날 밤 삼촌에게 말하던 말투는 어찌도 다정했는지도 기억하고, 아버지가 삼촌과 싸운 뒤 우는 소리마저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무 어려서 어른들의 사랑이라는 건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알고 있다. 아버지는 삼촌을 사랑한다. 삼촌도,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말리지 못했다.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내가 울던 걸 멈추고 이 모든 사실을 떠올리고 있으니 삼촌은 내가 진정하는 동안 내게 받아 간 손수건을 열어봤다. 삼촌은 일어서서 천천히 정사각형으로 접혀있던 손수건의 반절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나는 그 순간 시선이 홀린 듯 그 내용으로 천천히 눈을 올리고, 그 종이에 얼핏 쓰여있는 내용을 읽고 말았다.

 

‘미안하다’고, 쓰여있었다.

 

 한 손에 들려있는 종이에는 미안하다고 쓰여있었다. 그 앞에 얹혀 있는 것은 아버지가 항상 사용하시던 책갈피, 민들레였다. 햇빛에 바싹 마른 민들레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주광색 조명 아래 비치고 있었다. 샛노란 민들레는 더욱더 노랗게 보였고, 그 모든 상황이 민들레로 인해 멈춰진 듯했다.

 

*

 

 삼촌이 떠난 지 좀 된 날이었다. 그날 나의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뒷동산으로 올라가 삼촌이 탔을 기차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삼촌이 올 때는 여름이었지만, 돌아가실 때는 가을이었다. 항아리 안에 피어있던 능소화는 지고, 민들레는 말라서 삼촌의 손에 들려졌다. 집에 있던 모든 꽃은 버려진 지 오래되었고, 노래하던 아버지는 노래를 그만두게 되었다.

 

 최근, 곰 인형의 등에서 편지 한 통이 발견됐다.

 

 별 다를 바 없는 일상이 이어졌지만, 그 편지 한 통에 아버지가 울면서 웃었다는 점이 가장 특별했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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