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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아저씨와 재현 형

/누.누 

나는 다섯 살 난 어린애입니다. 이름은 정우단이고요, 고만한 형아 둘, 영 바보 같은 형 하나, 그리구 우리 무서운 형님 하나 이렇게 다섯 식구로 살고 있습니다. 막내둥이로 사는 일은 쉽지 않지만서도 가끔 채율 형이 몰래 건네는 캐러멜로 설움을 잊습니다.

 나는 다섯 살이지만 바쁜데요, 학교에 간 형들을 기다리다 재현 형에게 혼쭐 나고 글공부를 하는 것이 일과입니다. 참, 재현 형이 우리 무서운 형님, 이름이 신재현입니다. 재현 형은 무척 잘생겼습니다. 종종 들리는 가게 아주머니 말씀하시기론 우리은하에서 가장 빼어나다는데 나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바쁩니다. 아저씨가 나와 함께 게임을 하기로 했거든요. 아저씨는 우리 비행선에 사는 모르는 사람으로, 같이 산 지는 열흘이 조금 넘었습니다. 재현 형 말로는 얹혀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얹히는 건 몸이 안 좋아지는 나쁜 일 아니었습니까? 아저씨는 가장 좋은 방에서 지내는데 이해가 안 갔습니다.

 

 "아저씨, 나는 C-6835 천국이 좋습니다."

 "그래라. 근데 말투가 왜 그러냐. 신재현 걸로 또 이상한 거 읽었지."

 "점잖은 아이의 말투를 비웃는 어른은 나쁩니다." 

 "시작했다."

 아저씨는 게임을 할 때 다섯 살인 나도 봐주지 않는 고약한 사람입니다. 지난번엔 개중에 내가 제일 영특하다며 몰래 과자도 주었으면서 오늘은 내가 다른 은하로 가는 사다리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떨어트립니다. 결국 난 또 져서 심통이 났습니다. 한 판 더 하자고 조르니 어렵다고 한 발 빼는 비겁한 아저씨. 하지만 결국 나를 이기지 못하고 해 주었습니다. 나는 세 번 이기고 아저씨가 두 번 이겼습니다. 통쾌합니다! 말씨도 안 바꿀 겁니다.

 "야."

 게임기를 정리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걸었습니다. 난 들은 척도 않고 머리만 긁었습니다.

 "신재현이 나보다 나이 많은데 왜 나만 아저씨냐."

 그랬던가요? 한번 아저씨를 찬찬히 봤습니다. 아저씨가 퍽 어려 보이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 같아서요."

 "한 판 더 해."

 정리한 게임기를 다시 꺼내 홀로그램 화면을 켠 아저씨는 참 없어 보였습니다. 아까보다 좋은 자리를 찾았지만 내 캐릭터는 도통 위로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좀 전에는 분명 내가 더 잘했는데 이상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아저씨가 이겼습니다. 그래도 동점입니다. 결국 다섯 살 난 어린애와 실력이 비슷하다는 뜻인데도 신나 보이는 아저씨가 한심했습니다.

 

 아저씨와의 승부를 기록하는 패드에 숫자를 입력하는데 재현 형이 날 불렀습니다. 못 들은 척했는데 아저씨가 내 등을 쿡 찔렀습니다. 복도로 나가 보니 형의 방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발밑을 지나가는 청소 로봇에게 인사를 해 주고 형에게도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를 하자마자 철문이 철커덩 닫혔습니다. 뒤를 돌아보기 전에 형이 내 앞에 다리를 접어 시선을 맞추었습니다. 

 "정우단."

 "네."

 "문대 씨와 노는 게 즐겁니."

 흠. 신기한 질문이었습니다. 아저씨와 노는 게 즐겁냐고 묻는다면, 맞습니다. 하지만 꼭 아저씨여서 즐거운 건 아닙니다. 나의 수준에 맞는 놀이 방법을 터득한 사람은 아저씨뿐이었으니 즐거운 것입니다. 내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자 형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적당히 놀고 공부도 하렴."

 "매일 공부 중입니다."

 "책 읽는 거 말고."

 밖의 풍경을 보며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그런 나를 바라보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나는 나가지 않고 형 방을 조사했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면 기회는 오지 않으니까요. 여기저기 버튼을 마구 누르는 내 뒤에 서 있던 형은 내가 어느 곳을 만지자 내 손을 꽉 잡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더 빨랐습니다! 그 기계는 푸른 홀로그램을 보여 주었습니다. 재생이 바로 멈추는 바람에 목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어떤 남자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였습니다.

 

 난 형에게 저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습니다. 형은 내 손을 꼭 잡은 채 파란 작은 남자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형이 별을 볼 때만 보여 주는 얼굴이었습니다. 형이 보는 것도 모르는지, 작고 푸른 남자는 혜성보다 쏜살같이 사라졌습니다.




 




 

 아침은 언제나 힘듭니다. 나처럼 어린 아이에게는 더욱 힘듭니다. 침대를 잘 정리하지 않으면 꾸중을 듣기 때문에 베개를 팡팡 쳤습니다. 같은 방을 쓰는 태준 형이 그 소리를 듣고 일어났습니다. 원래라면 천박한 욕설을 할 텐데 오늘 형은 마냥 표정이 밝았습니다. 뭐가 저리 좋을까요. 이불을 정리하며 형을 흘겨보았습니다. 또 게으르게 정리도 안 합니다. 차라리 방을 혼자 쓰게 되면 좋으련만!

 

 하품을 하며 식당에 갔습니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채율 형이 아저씨 옆에 앉아 발을 달랑이며 손도 흔들었습니다.

 

 "우단아, 잘 잤어?"

 

 고개를 끄덕이고 재현 형에게도 인사를 했습니다. 형은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무슨 맛인지 궁금하지만 형은 항상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일어났니."

 

 형은 아침에도 목소리가 차분합니다. 의자에 앉으려는데 이 구닥다리 바보 의자가 나를 올려 주지 않았습니다. 식탁 로봇을 바꾸자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새것을 사 주지 않은 탓입니다. 대신 아저씨가 날 번쩍 안아 의자에 앉혔습니다. 차려진 식기 위에 달걀과 시금치, 고기와 토마토가 올라왔습니다.

 

 "편식하지 마라."

 

 아저씨 접시를 보니 싹 비어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접시를 자랑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자랑을 해 봤자 아저씨는 힘도 약하고 키도 재현 형보다 작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자존심이 상해 시금치를 꼭꼭 씹어먹었습니다. 채율 형 접시에는 자꾸 고기가 올라갔습니다. 아저씨가 식탁 로봇에게 고기를 더 주라고 계속 부탁해서입니다. 형은 배부른데도 억지로 먹다가 재현 형에게 혼났습니다. 아저씨도 정도를 모른다고 혼이 났습니다. 나는 그런 둘을 보며 몰래 웃었습니다.

 

 오늘은 채율 형도, 윤신 형도 아직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태준 형이 떠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태준 형은 새로운 가족을 정했고 우리 곁을 떠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미 가족인데도요. 채율 형은 훌쩍훌쩍 울더니 태준 형을 안아 주었습니다. 윤신 형이 나를 잡아끄는 바람에 넷이서 껴안고 말았습니다. 형들이 우니 나도 슬픈 기분이었지만 소리 내서 울지 않았습니다. 재현 형이 형들 사이에 파묻힌 나를 꺼내어 줘 나는 재현 형의 어깨에만 얼굴을 묻고 최태준은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최태준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짜증 났습니다.

 

 여행선이 우리 비행선에 왔습니다. 무서운 진동이 느껴져 형에게 더 찰싹 붙었습니다. 곧 모르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재현 형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아 눈을 꼭 감았는데 형이 내 귀를 덮어 주었습니다.

 

 최태준은 그렇게 별들 사이로 가 버렸습니다. 가기 전에 내 엉덩이를 한 번 두드렸지만 난 손만 휘저었습니다. 슬펐습니다. 난 이제 방을 혼자 쓰게 되었습니다. 채율 형도 윤신 형도 나를 떠나면 난 누구에게서 학교 이야기를 듣죠? 갑자기 아저씨 생각도 났습니다. 나는 발버둥을 쳐 아래로 내려가 아저씨의 옷을 끌어당겼습니다. 아저씨는 채율 형을 내려 주고는 나를 안았습니다. 내 목덜미에 한숨이 느껴졌지만 아저씨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게임 동무는 잃을 수 없었습니다.

 

 채율 형과 윤신 형은 늦게나마 학교를 갔습니다. 아저씨의 우주선이 형들을 데려다 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하염없이 창문만 바라봤습니다. 아저씨의 우주선은 느렸고 별들은 아주 촘촘히 박혀 있었습니다. 재현 형도 내 옆에서 학교 가는 형들을 바라봤습니다. 조용히 사라지는 우주선이 갑자기 무서워 보였습니다.

 

 별들을 보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 난 어느새 아저씨의 품 안이었습니다.

 

 "깼냐."

 

 눈을 비비는데 좋은 냄새가 났습니다. 내가 두리번거리자 아저씨가 답을 알려 줬습니다. 나가는 김에 재료를 사서 닭 요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 요리한 음식이라니! 재현 형은 부엌을 사용할 줄 몰라 우리에게 요리를 해 준 적이 없습니다. 무척 어렵다던데 아저씨는 어떻게 사용한 걸까요. 사람의 요리는 난생처음이라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내가 발버둥을 치자 아저씨가 날 아래에 내려 주었습니다.

 

 "진채율이랑 오윤신 오기 전인데, 먹게?"

 "네, 먹을 겁니다."

 "넌 애를 어떻게 키운 거냐."

 

 재현 형도 옆에 있었나 봅니다. 형이 내 머리를 살짝 만졌다 손을 바로 떼었습니다.

 

 "잘 키웠지."

 

 퍽이나. 아저씨가 날 흉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닭을 먹고 싶어 잠자코 있었습니다. 식탁 로봇이 조용한 것도 좋았습니다. 재현 형이 입력한 내용대로 식탁 로봇이 매번 우유를 더 마시라고 할 때마다 짜증이 났습니다. 아저씨는 닭의 다리 하나와 고기, 국물을 마음껏 주었습니다. 난 천천히 고기를 씹었습니다. 재현 형과 아저씨가 날 보며 웃으니 이상했습니다.

 

 "아저씨."

 "왜, 맛없냐."

 "돈도 없으면서 닭은 어떻게 샀습니까?"

 

 내 질문에 아저씨가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형이 턱을 괴며 아저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게요, 어떻게 샀을까.

 

 "퇴직금으로 산 거다, 퇴직금으로."

 

 아저씨는 예전에 비행사였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비행사가 좋은 직업이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수많은 나라가 사라지고 제국이 되어 아무도 총을 쏘는 우주선을 운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운전기사로 일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나는 총을 쏘는 아저씨를 상상하다 고개를 젓고는 국물을 열심히 마셨습니다. 다리의 뼈를 잡고 열심히 먹는데 귓가에 아저씨의 질문이 들렸습니다.

 

 "이런 일이 많냐."

 "네?"

 "정우단 너 말고."

 "말할 때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명확히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얘 이상한 것 좀 그만 읽게 해. 알다시피 말을 잘 안 들어서. 둘이 또 내 흉을 봅니다. 지금 들어 보니 나의 말투가 이상하기보다는 아저씨와 형의 말투가 비슷해, 무지 많이 훨씬 이상합니다. 난 잠자코 마저 닭 다리나 뜯었습니다.

 

 "태준 같은 일?"

 

 웬일로 아저씨가 조용했습니다. 고개를 드니 둘 다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자리를 옮기면서 말하는 게 낫지 않냐. 우단은 어차피 몰래 들어요. 대체 어떻게 키운 건데.

 

 "두어 번 더 있었어요. 우단을 데려오기 전에."

 "네가 낳은 애들은 아닐 거고."

 

 바보 같은 아저씨. 아무리 작게 말해도 나에게는 다 들립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재현 형이 눈을 깜빡였습니다. 곧 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습니다. 재현 형이 이렇게 크게 웃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어쩌면 가게 아주머니 말씀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사였다며. 아카데미 다닐 때 신체에 대해서는 안 배웠어요?"

 

 역시 재현 형입니다. 생각해 보니 형은 남자라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아저씨는 그것도 모르는 걸까요? 자신이 몰랐던 것을 들켜 부끄러웠는지 아저씨는 파들파들 떨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남겨진 애들이에요."

 "그러냐."

 

 바르르 떨던 아저씨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대체 전쟁은 어땠길래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 형도 아저씨도 창밖을 바라보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형도 전쟁에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말 외에는 다른 어떤 이야기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둘처럼 창을 보는 척하다 별 세기 놀이를 그만두고 아저씨의 손을 찌르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돈 좀 있는 집안이었던 것 같은데, 왜 다른 일은 안 하고."

 "같이 지내던 사람이 이런 일을 했거든."

 

 같이 지내던 사람? 형이 같이 지내던 다른 어른이 있었단 말입니까? 내가 너무 놀라 갑자기 손을 찌르는 걸 그만둬서 그런지 아저씨도 내 손가락을 꽉 쥐었습니다. 손가락이 아파서 빼자 아저씨가 따뜻하고 큰 두 손으로 내 손을 덮고 토닥였습니다. 식탁 로봇까지 조용해 부엌이 아주 조용했습니다.

 

 그릇이 비워진 걸 봤는지 곧 재현 형이 일어났습니다. 형을 따라 일어나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고 형의 말대로 오늘 마셔야 하는 우유까지 다 마셨습니다. 식탁 로봇이 꺼져도 소용이 없었다니! 조금 분했습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복도를 걸었습니다. 기다란 재현 형의 다리를 바삐 쫓아가는데 아저씨의 따끈한 손이 내 머리를 턱 덮었습니다.

 

 "언젠가는 얘도 보내나."

 

 그 말을 듣고 형이 천천히 뒤를 돌았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형은 지난번 홀로그램에서 본 남자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같이 살고 싶으면 같이 살고 아니라면 좋은 곳을 찾아서 보내 줘요. 태준은 사랑을 원했어요."

 "그러면 보내 줘?"

 "인간은 사랑받길 원하던걸요. 어떤 방식이든."

 

 형과 아저씨는 눈을 마주한 채 조용히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형을 오래 노려보다 방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동그란 문이 닫히는데도 재현 형은 동그랗게 웃었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서요. 가끔 형은 만화 동화 속 악당처럼 웃습니다. 내가 손을 잡자 형이 날 내려다보았습니다.

 

 "형, 드릴 질문이 있습니다."

 "우단, 지난번부터 말투가 이상한데."

 "저 박문대라는 작자는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겁니까?"

 "음."

 

 형이 바로 대답하지 않는 모습은 낯설었습니다.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제가 해서 그런 걸까요. 형의 기기로 하는 즐거운 공부 시간을 빼앗기기 싫었던 저는 급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아저씨가 언제까지 저 방을 사용하실 건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형이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 그건…… 나도 모르겠네."

 

 그날 형은 나와 함께 잤습니다. 원래 지금은 글공부 시간인데도요. 최태준이 사라진 침대는 그대로 둔 채 우리는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나는 태준 형을 잠깐 생각하곤, 형 때문에 못 읽은 '은하 제국 적장자가 힘을 숨김'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채율 형은 요즘 역사, 그러니까 우리의 핏줄인 나라를 공부합니다. 몇백 년도 더 전인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즐겁습니다. 형은 곧잘 윤신 형과 나를 앉혀 두고 대한민국과 조선에 대해 신나게 말합니다. 요새는 조선의 문화에 대해 배우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건축은 지리나 날씨와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리는 뭐고 건축은 또 뭘까요? 나는 몰랐지만 아는 척했습니다. 이따 찾아 보면 그만입니다.

 

 "재현 형이 쓰지 말라던 방은, 음! 그러니까."

 "그러니까?"

 "문대 아저씨가 쓰는 방을 사랑방이라고 불렀대!"

 

 사랑방. 그게 뭐지요. 사랑을 넣는 방? 내가 물었으나 채율 형도 정확한 뜻을 몰랐습니다. 학교도 그리 똑똑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형이 학습 로봇에게 사랑방을 검색해 달라고 했습니다. 로봇은 재현 형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사랑방의 뜻을 설명했습니다.

사랑방. 사랑으로 쓰는 방.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아저씨는 지금 저 방을 사랑으로 쓰고 있는 걸까요?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이렇게 궁금할 때는 직접 물어보는 게 속이 편합니다. 나는 채율 형 손을 잡고 가 아저씨의 방문 옆에 달린 버튼을 눌렀습니다. 조금 뒤 답이 왔습니다. 왜.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채율 형을 찔렀습니다.

 

 "문대 아저씨! 나 채율이."

 

 문이 바로 열렸습니다. 아저씨의 머리털이 바짝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소리를 내어 웃자 아저씨는 어리둥절해 보였습니다.

 

 "왜."

 

 착한 채율 형은 아저씨가 저렇게 말해도 쪼르르 달려가서 안깁니다. 형은 아저씨가 싫지도 않나 봅니다. 아저씨, 아저씨 하고 무릎에 앉아 조잘거리는 형을 보는데 아저씨가 날 안아서 다른 무릎에 올려 주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이 방을 사랑으로 써?"

 "그게 무슨 소리야."

 

 채율 형이 열심히 설명해도 아저씨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내가 찬찬히 설명하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역시 학교는 별 쓸모가 없는 곳 같습니다. 뭐, 내가 더 영특한 걸지도 모르지만요.

 

 "사랑으로 쓴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집 주인이 거주하는 방을 말할걸. 아카데미에서 역사 배워?"

 

 그제서야 채율 형은 흥분해 아까 내게 했던 공부 내용을 읊었습니다. 조선과 대한민국, 아시아 연합과 세계 공화국. 들어도 들어도 어려운 내용뿐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잠자코 들으면서 채율 형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나는 궁금한 게 따로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집 주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자는 거죠? 이 비행선의 집 주인은 항상 재현 형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이 이 방에서 자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질문을 하려는 순간 재현 형이 아저씨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채율, 우단. 자야지. 윤신은 벌써 자는데."

 

 채율 형이 내려가고 나는 아저씨가 다리에서 직접 내려 주었습니다. 우리는 양치를 하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꼼꼼하게 감았습니다. 재현 형이 우리 둘의 눈과 귀와 입 안을 살피는데 아저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아저씨는 이 곳에 머무는 동안 항상 내 머리를 감겨 주었는데도요. 아까 우리가 한 질문이 속상했던 걸까요? 태준 형처럼 아저씨를 내쫓는 것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릅니다. 채율 형은 아저씨를 사랑합니다. 나는 아니긴 하지만 채율 형의 마음을 지켜 주고 싶습니다. 재현 형도 아저씨를 좋아합니다. 이 사실을 아저씨에게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별들이 더 반짝이는 시간이 되자 난 복도로 몰래 나왔습니다. 이런. 형이 이미 아저씨의 방 앞에 서 있었습니다. 둘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형이 우리를 위해 아저씨와 이야기 중이길 바랐습니다. 나는 몰래 청소 로봇 뒤에 숨어 아저씨와 형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갑작스럽긴 하네요."

 "애초에 사흘 정도만 있다 가기로 했었어."

 

 재현 형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저씨의 방도, 복도도, 가끔 장을 보러 갈 때 지나가는 우주처럼 조용했습니다. 나는 침도 삼키지 못하고 둘의 이야기가 계속되길 기다렸습니다. 말소리 대신 다른 소리가 먼저 들렸습니다. 아저씨가 짐을 챙기는 소리였습니다. 신재현 네가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애들과 너무 친해지는 걸 경계 중이잖아, 계속."

 "당연하지 않나.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아저씨가 떠난다고요? 내 생각이 맞았습니다. 나와 채율 형이 그 방에 대해 질문을 해서 아저씨가 화가 난 것입니다. 난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강하게 참았습니다. 쪼그려 앉아 둘 이야기를 들으니 다리가 아파 눈물이 날 뻔한 겁니다.

 

 "그래, 네 말이 맞지."

 "무슨 뜻이죠."

 "이제 떠나는 게 맞다."

 

 또 우주처럼 조용했습니다. 그 사이를 가르듯 형이 아저씨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난번부터 채율 형과 나에 의해 사랑방이 된 아저씨의 방은 문턱이 높아 들어가기 힘듭니다. 아저씨는 여전히 짐을 챙기는 중이었습니다. 재현 형은 그저 들어간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저씨를 말리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울지도 않았습니다.

 

 "류건우."

 

 형도 바보가 된 걸까요. 아저씨 이름은 박문대입니다. 아저씨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습니다. 멀리서였지만 아저씨의 얼굴이 별빛처럼 창백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우주의 밤이 어두워 아저씨는 하얗다 못해 푸르게 보였습니다.

 

 "역시 알았냐."

 "물론이죠."

 "언제부터."

 "처음부터."

 "……그런데 왜."

 "왜냐고 묻기 전에 할 말이 있지 않나."

 형의 차가운 대답에 아저씨가 무서웠는지 입을 다물었습니다. 나도 무서웠습니다. 이 싸움으로 인해 정말 아저씨가 가 버릴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가 별들 사이로 사라지는 두 번째 사람이 되면 어떡하죠? 나는 떠나는 아저씨를 말릴 작정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하하. 여전하네요."

 

 그때 형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분명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도 형은 다시 아저씨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형이 자주 짓는 표정이라 나와 채율 형, 윤신 형이 아주 잘 아는 얼굴이었습니다. 저럴 때 우리는 형의 말을 무조건 들어야 했습니다. 동시에 아저씨의 방문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먼저 말할까."

 

 숨어 있던 나는 눈만 깜빡였습니다. 아저씨의 동그란 방문도 천천히 닫혔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하얀 문과 문턱 사이로 형의 발목만 보이다 곧 사라졌습니다.

 

 "어서 와요."

 

 형의 말이 환영인지 재촉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안심했습니다. 재현 형은 형이 나오길 기다리던 내가 다리가 저려 혼자 주물러도, 거실에서 밤 늦게 게임을 해도, 심지어 홀로그램 사다리에서 떨어지다 크게 소리를 냈는데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졸려 자러 갈 때조차 사랑방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둘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 중일까요?

 하지만 다행입니다. 영특한 나의 생각으론 아저씨는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뭐든 주인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잘 됐지요. 아저씨가 저 방을 계속 쓰게 된다면 역시 사랑으로 쓰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은하 제국의 적장자가 차지한 왕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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