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
딱히 미혼모 소리를 들어도 상관 없었다. 박민하는 밖에서 제 아들이라 불리는 아이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곤히 자는 아이는 다른 이들의 우려와 달리 생각만큼 키우기 힘들지도 않았다. 아이는 똑똑했다. 혈육이라서 씌인 콩깍지가 아니라 정말 또래보다 훨씬 총명했다. 거기에 죽은 제 언니의 성정보다는 다른 누구를 닮았는지 나이답지 않게 차분한 덕도 있었다.
"도윤아."
박민하는 조용히 조카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지 않은 이유가 이르게 철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들어서였다. 이럴 때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박민하는 제 목이 메이지 않도록 그 이름을 두어 번 더 중얼거렸다. 도윤아. 연신 반복되는 부름에 아이가 몸을 약하게 뒤틀었다. 박민하는 조심스레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아이는 다시 새근거리는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졌다. 새근새근. 토닥토닥. 규칙적인 소리에 맞춰 박민하의 생각도 깊어졌다. 타박타박. 생각은 깊숙한 근심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
"이 시기에 이사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옥탑방에 바로 입주민을 구했다는 사모의 말에 박민하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 사람이 겨우 두어 달 간만 계약을 했다는 것도, 대학가인 이 동네에서는 굉장히 애매한 11월 즈음 입주를 한다는 것도 이상해서였다. 집주인의 입장에선 빨리 돈이 들어오니 상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박민하도 구태여 무얼 더 캐묻지 않았다. 그저 옥상의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하는 아이에게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한다는 말을 어떻게 전할 지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했다. 종종 이불 빨래를 널거나 잠시 사색에 잠기기에도 유용했던 옥상이기에 아쉽기도 했지만 그건 다음 문제였다. 당장 입주가 이번주랬다.
"도윤이 오기 전에 위에 올려둔 것 좀 치워야겠네."
반지하까지 3층, 옥탑방까지 더하면 4층인 다세대 주택. 반지하는 아무도 살지 않고 1.5층에는 나잇대에 비해 오지랖이 적어 좋은 집주인 내외가, 2.5층에는 박민하 모자가 살던 이 곳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인생에 누가 더 끼어드는 건 지쳐버린 박민하였기에 그녀는 누가 오든 그 사람과는 최대한 엮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아이가 오기 까지 한 시간. 박민하는 두꺼운 니트 가디건을 걸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평상에 늘어놓은 아이의 장난감 몇 가지와 1인용 텐트 등을 챙겨야했다.
*
"안녕하... 세요?"
어쩐지 입주한다 해놓고 소식이 없다 했다. 주말에는 아이를 데리고 조금 멀리까지 나갔다가 다음날은 나란히 오후 늦게까지 늦잠을 잤는데 그 사이 이사를 뚝딱 끝낸 모양이다. 수업 준비를 마친 박민하는 처음 보는 얼굴과 계단에서 정면으로 마주해버렸다. 당연히 집주인 내외 중 하나의 인기척이라 생각한 박민하의 인삿말이 당황에 물들어 끝이 올라갔다. 덩달아 눈이 동그래진 남성이 고개를 숙이며 그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듣기 좋은 목소리가 시린 공기에 담백하게 울렸다.
"어.... 위에 이사 온 사람입니다."
"아아, 네, 네. 오신다고는 들었습니다. 그..., 안녕하세요."
박민하는 어색함에 고개만 꾸벅 숙였다. 상대도 마찬가지인지 연신 고개만 따라 숙였다. 내 집 앞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람. 1층과 2층의 경계에서 박민하는 오도가도 못한 채 아래를 쳐다보았다. 아, 딱 맞춰나와서 더 늦으면 지각인데. 눈치가 보였다. 남성은 슬쩍 박민하의 시선을 따라 아래 대문을 보았다. 그러고는 슬쩍 몸을 틀어 공간을 내어주었다. 시간을 뺐었네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계단을 마저 올랐다. 박민하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걸음을 재촉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네. 남자인 게 신경은 쓰이지만 아이와 지내기에 위험한 이웃은 아닐 것 같다고 박민하는 생각했다.
*
"나 위에 올라가도 돼?"
아이가 물어왔다. 10월 말에 중간고사를 보며 패딩을 꺼낸 박민하는 기겁을 했다. 이 추위에? 물어보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딱히 놀 거리도 없었다. 박민하는 옷장에서 두터운 아동용 패딩을 꺼내 아이에게 입혀주었다. 그제야 아이는 배시시 웃음을 머금었다. 그 미소에 화답해주려는 순간, 박민하는 문득 떠올랐다. 맞아, 위에 사람 들어왔구나. 그래서 박민하는 올라가려던 입꼬리를 애매하게 흐릴 수밖에 없었다.
"도윤아. 생각해보니 이제 위에 못 올라가겠다."
"왜요?"
"으음. 이제 옥상에 사는 분이 계시거든."
박민하는 한껏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아이는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어제도 올라갔는데? 문대 아저씨랑 같이 하늘 봤어."
어제라면 박민하의 수업이 늦게 끝나 아이 먼저 하원한 날이었다. 바로 집에 들어오지 않고 옥상에 올라갔다니. 놀란 박민하가 아이를 다그치려 입을 열었으나 먼저 흘러나온 건 또박또박한 아이의 목소리였다.
"아저씨가 마음대로 올라와도 된대요. 원래 도윤이가 하늘 보던 곳이라고 알려줬더니 고맙다는 답례래."
"아니, 도윤아."
"그리고 아저씨 집에 자주 없댔어. 올라갈래요. 네?"
아이가 답지 않게 박민하를 졸랐다. 몇 없는 상황에 박민하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아이의 경계심을 무너트렸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일을 막고 싶지도 않다. 결국 박민하는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그럼 같이 올라가자."
그렇게 하얀 패딩을 같이 갖춰입은 둘은 현관을 나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마침 별이 잘 보이는 날이었다. 이래서 아이가 올라가고 싶어했나 박민하는 생각했다.
옥상의 경관은 여전했다. 작지는 않은 옥탑방 하나, 그리고 앞에 놓인 넓다란 평상. 주인 없는 의자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담요를 덮은 성인 남성의 인영 하나. 그가 누군지 알아본 박민하는 작은 손을 맞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조용히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작은 손은 너무나도 쉽게 박민하의 손을 빠져나가 저 앞으로 달음박질쳤다.
"......!"
"아저씨!"
아이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평상 위에 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몸을 튼 인영에 와락 안겼다. 안기는 모습이 썩 익숙해보였다. 박민하는 너무 놀라 입만 벙긋거렸다. 까르르 웃는 아이의 소리와 왔니? 하고 묻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꼬물거리며 남성이 두른 담요 속으로 제 몸을 구겨넣었다. 남성이 낮게 웃으며 아이에게 제 팔을 둘러주었다.
"뭐하려고."
"별 보려구요."
"그래. 같이 보자."
남성은 아이에게 별 다른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는 번쩍 고개를 들며 도리질을 했다. 저 같이 온 사람 있어요! 씩씩하게 덧붙이며. 그 말에 남성이 고개를 돌렸다. 어둑한 하늘 아래서 그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 그래서 박민하는 평소 잘 꺼내지 않는 말을 먼저 뱉어냈다.
"도윤이... 엄마예요."
안녕하세요. 박민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이모."
"응, 도윤아."
"이모 밖에서는 엄마인 거 언제까지 할 거예요?"
"음.... 고민 중. 도윤이는 이모가 엄마인 거 싫어?"
"으응. 싫은 건 아니고."
품에 안긴 아이가 짧은 팔로 박민하의 허리를 감쌌다.
*
언니와 부모님이 사고로 떠나며 남긴 보험금이 있어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건 목숨값이라 아까워 못 쓴다는 건 아이가 없을 때나 할 수 있는 소리다. 박민하는 급하게 휴학 후 유산을 정리하며 아이에게 들어가는 모든 돈을 언니의 보험금으로 충당했다. 아이가 아직 개월로 나이를 셀 때 일이라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는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아이의 보호자로 내내 지냈다. 유치원에 적응하는 걸 보고는 1년 후 다니던 대학 근처에 적당히 저렴한 투룸 전세를 얻었다. 그 김에 본가는 정리했다. 어차피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 회사에 들어가면 새로 집을 구해야하니 2년 계약이 딱 적당하기도 했다.
스물여섯의 박민하에게 붙은 수식어는 단순했다. 아직까지 졸업하지 않은 대학생. 애 딸린 대학생. 어차피 복학했을 때, 동기는 거의 졸업한 상태였다. 박민하에게 아이가 있는 걸 굳이 떠벌리지 않는 한 소문날 일은 없었다. 그래서 박민하는 집주인 내외가 아이를 제 배로 낳은 거라 지레짐작하는 걸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민하. 박도윤. 아이는 제 엄마의 성을 따랐으니 제 이모와도 성이 같을 수밖에. 유치원 선생님이 박민하에게 도윤이 어머님- 하고 부르는 것에 의문을 가진 아이에게 박민하는 "괜찮아. 밖에서는 이모가 도윤이 엄마야." 하고 대답했다. 시선이 불편하진 않았다. 미혼모인 언니가 부모님과 함께 사고를 당해 제가 조카를 키우게 되었어요- 하고 설명하느니, 그냥 제가 아들 하나 일찍 낳은 듯 사는 게 나았다.
"어차피 결혼이나 연애 생각도 없고."
아이를 등원시킨 박민하가 멀어지는 유치원 버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도 수업을 가기 위해 다시 집으로 올라가던 중, 그녀는 다시 옥탑방의 남성과 마주쳤다.
이번에는 서로 가벼운 목례가 끝이었다.
*
새로운 이웃이 늘어났대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박민하는 여전히 학업과 육아를 병행했다. 어쩌다 마주치는 남성과는 가벼운 눈인사만 나누는 사이였고, 아이에게는 옥상에 올라가지 말라 엄하게 일러두었다는 것만이 바뀐 점이었다. 어차피 겨울이라 아이도 자주 밖에 나가지 못할 테니 정말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박민하는 그렇게 11월을 다 보내고 12월을 마주했다. 한 달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쯤이면 슬슬 기말고사를 볼 타이밍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학생인 박민하가 아이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도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난 학기 한 차례 경험해보았고, 여느 때처럼 아이를 키울 때 언제든 찾아오는 조금의 난관 말고는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항상 결과는 예측과 다르다는 게 문제였지만.
"도윤아?"
식탁에서 이어폰으로 이러닝 강의를 재복습하던 중 갑자기 쎄한 감각이 뒷목을 타고 올라왔다. 박민하는 귀에 꽂힌 것들을 냅다 내던지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 넓지 않은 집에서는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윤아? 박도윤? 박민하가 재차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침실로 들어갔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놀이방과 베란다를 열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에도 아이는 없었다. 박민하가 공부를 시작한 지는 두 시간 정도. 그 중 이어폰을 낀 시간은 직전 30분 정도. 한 시간 반이면 여섯 살 애가 지루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박민하는 마른 침을 목 뒤로 넘기며 현관 중문을 열었다. 아이가 제일 자주 신는 작은 운동화가 자리에 없었다.
"아."
박민하는 그 자리에서 뭐 하나 걸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가야만 했다.
*
대학가지만 원룸촌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이라 거리가 조용했다. 그럼에도 어른 걸음으로는 몇 분, 아이 걸음으로는 10분만 걸어가면 호프집과 카페가 즐비했다. 길은 미로 같았다. 주택과 빌라가 모인 곳을 정신 없이 지나 어지럽고 시끄러운 미로 속을 박민하는 헤맸다. 아이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며 아이와 한 번이라도 가보았던 카페 문을 열어보기도, 혹시나하고 어두운 골목 사이에도 들어가보았다.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맨 발에 슬리퍼, 그리고 늘어난 맨투맨과 얇은 트레이닝 바지. 그게 박민하의 옷차림이었다. 지나가는 이들은 한 번씩 박민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드러난 뺨이며 손이며 발이 시뻘겋게 얼어가는 것도 모르고 박민하는 한참을 동네를 돌고, 다시 집 근처를 돌고, 다시 돌다 눈에 들어온 경찰서에 뛰쳐들어갔다.
"...!"
겨울바람에 헝크러진 머리카락과 파랗게 질린 얼굴에 경찰 하나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 박민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이가, 우리 애가 없어졌어요. 애가 집에 없어요. 없었어요."
공부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니까 애가, 애가 없어졌는데.... 우리 도윤이가 없어요.... 잔뜩 언 몸과 손이 벌벌 떨렸다. 그런 박민하에게 한 여성 경찰이 다가와 다급하게 담요를 둘러주었다. 눈물 자국이 즐비한 얼굴을 닦으라며 물티슈도 건네주었다. 제복을 입은 이 여성은 물론이고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 경찰은 잔뜩 떠는 박민하의 언 손을 붙잡았다. 박민하는 그대로 무너졌다.
*
근처 cctv를 돌려보자며 일단 박민하를 진정시킨 경찰은 제 양말도 내어주고 핫팩까지 쥐어주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아이를 발견하여 보호중이라면 연락이 왔을 수도 있으니 폰을 확인해보자는 말에 박민하는 제가 정말 아무것도 없이 나왔음을 실감했다. 집에 먼저 가보자며 여성 경찰과 중년의 남성 경찰이 박민하를 차로 안내했다. 문이 열리지 않는 뒷좌석에 탄 박민하는 손톱으로 꾹꾹 손바닥 살을 눌렀다. 아이를 3년이나 돌보았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제 안일함이 한심하녀 박민하는 하염없이 손바닥에 손톱 자국을 남겼다.
"68번길 12. 여기 맞으시죠?"
"네, 네!"
경찰이 차 문을 열어주자마자 박민하는 다급하게 튀어나갔다. 한 층 반의 계단을 단숨에 뛰쳐올라가던 중, 반 층이 남은 순간 집 문이 벌컥 열렸다. 남성이었다. 옥탑방에 이사 온 남성이었다. 눈이 잔뜩 커진 박민하가 기절할 듯 마저 계단을 오르는 사이 그의 모습이 제대로 들어왔다. 남성은 한 팔로 무언가를 안아 들고 있었다. 아이였다. 박민하의 아이였다.
아. 도윤아. 박민하는 오르던 계단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아버렸다. 뒤로 넘어가려는 그 몸을 붙들려 남성이 다급하게 박민하에게로 달려갔다. 당연하게도 그는 늦었지만 뒤에서 따라 올라온 경찰이 박민하의 몸을 받아들었다. 대신 남성의 큰 움직임에 그의 품에 안긴 아이가 깨어났다. 아이는 꾸물거리며 남성의 품을 파고 들다 얼굴을 번쩍 들었다.
"아저씨? 우리 이모 왔어요?"
"응. 이모 오셨네."
"이모? 이모! 이모!"
아이의 목소리에 박민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남성은 맨발의 아이가 버둥거리자 떨어지지 않게 양팔로 몸을 붙들고 제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박민하의 얼굴을 확인하자 눈물을 퐁퐁 흘리며 이모 소리를 반복했다. 박민하가 아이를 받으려 손을 뻗었으나 남성은 고개를 저으며 그저 아이가 정면을 볼 수 있도록 고쳐 안을 뿐이었다. 아이가 박민하를 목을 껴안자 남성과 박민하도 거의 껴안은 수준으로 가까워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아이에게 "이모 힘들겠다. 아저씨가 안아줄게." 하고 조곤조곤 말할 뿐이었다.
"괜찮아요. 도윤이 주세요. 제가 안을게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제서야 남성은 조심스레 박민하에게 아이를 안겨주었다. 아이는 훌쩍거리며 제 혈육에게 꼭 달라붙었다. 조금 버거운 무게에 그제야 아이를 찾았다는 실감이 났다. 박민하는 눈물로 젖은 아이의 뺨에 제 뺨을 가져갔다. 보드라운 뺨이 따끈했다.
*
아이는 세수를 시켜주고 진정하도록 등을 토닥이자 빠르게 잠이 들었다. 우느라 지친 모양이었다. 그런 아이를 도저히 혼자 둘 자신이 없어 박민하는 작은 몸을 제 품에 안고 위로 올라갔다. 옥상에 발을 딛자 눈에 들어온 건 평상에 앉아 있는 남성의 인영이었다. 옥탑방의 문을 두드릴 계획이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박민하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인기척에 남성이 고개를 돌렸다. 두 쌍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남성은 정중앙에서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앉아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박민하가 그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그...,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
"...많이 놀라셨겠어요."
저는 애가 허락 받고 올라온 줄 알았거든요. 남성의 말투는 여전히 담백했으나 그 사이에서 머쓱함과 미안함이 느껴졌다. 박민하는 고개를 저었다. 놀란 아이를 몇 시간이고 돌봐준 것, 경찰 측에 경위 설명까지 맡아서 해준 것, 그리고 처음부터 심심함에 올라간 아이를 내치지 않고 함께 놀아준 것까지. 오히려 박민하가 그에게 감사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박민하는 그걸 하나하나 말하기가 괜히 부끄러워 "제가 더 감사하죠."라는 말로 함축했다. 남성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박민하는 아이가 깰까 싶어 가볍게 까딱거리는 정도로 답했다.
시린 밤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남성이 제 무릎의 담요를 박민하에게 덮어주었다. 거절하려했으나 아이를 감싸며 앞에 덮어주는 바람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래 찬 공기를 쐬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박민하는 아이를 품 속 더 깊게 끌어안았다.
"도윤이가..., 절 이모라고 불러서 놀라셨죠?"
박민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대학생 이모랑만 같이 사는 모양이나, 엄마랑만 같이 사는 거나 그게 그거잖아요. 사연 설명하느니 차라리 미혼모라고 알아서 생각하겠거니 싶어서...."
그래서 밖에서는 제가 엄마라고 하고 다녔어요. 어차피 언니 성을 따른 거라 제 성이랑도 같고. 아, 언니 성을 따른 이유는 언니가 애를 혼자 낳아서 그래요. 그래도 언니는 직장이 있었는데.... 박민하는 제가 생각해도 구태여 필요 없을 말까지 늘어놓었다. 왜인지 그러고 싶어져서였다. 말이 끝나자 괜히 민망해진 박민하는 담요 아래로 아이의 등만 토닥였다. 아이는 미동도 없이 잠든 채였다. 남성은 그런 박민하를 가만히 바라보다 조용히 운을 뗐다.
"아이 엄마 아닌 건 진작에 알았습니다."
그 말에 박민하가 눈을 크게 떴다. 네? 목소리가 높게 올라갔다.
"애가 말해줬거든요. 사실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고. 말을 참 잘하던데요."
놀러오면 이것저것 말을 많이 해줘요. 덕분에 심심하지 않고요. 남성은 희미하게 웃었다. 박민하는 따라 미소 지었다. 사실 아이가 낯선 사람의 집으로 놀러다녔다는 점에서 놀랐지만, 앞에 앉은 남성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민하가 조심스레 귀찮지 않았냐는 질문을 했다. 그는 집에 있는 시간에 오히려 심심하지 않아 좋았으며, 평상에서 보는 하늘과 별이 예쁘다는 걸 알려주어 오히려 고마웠다는 답변을 했다. 아이가 생각보다 더 자주 놀러간 모양이다. 오후 늦게 하는 수업을 듣는 날이 가장 유력했다. 거의 주에 한 번 꼴이네. 박민하는 민망함에 아이를 꼬옥 끌어안았다.
"자주 놀러와도 된다고 말해주세요."
"네?"
"도윤이요. 생각보다 옆에 아이가 있으니 좋더라고요."
"아...."
"공부하실 때라던가, 맡기셔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아이가 이모 방해하기 싫다며 올라왔던 거라...."
남성은 사건의 내막을 들려주었다. 그걸 들은 박민하의 눈가가 조금 축축해졌다. 새삼 일찍 철이 든 아이의 성정이 다시금 느껴져서였다. 박민하는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가만히 느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남성은 그런 그녀를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었다. 코끝이 시릴 정도가 되어서야 박민하는 다시 입을 열 수 있었다.
"그..., 어...."
주춤거리던 박민하는 조심스레 폰을 내밀었다.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염치 없지만 혹시라도 저 없을 때 도윤이가 놀러가면..., 연락 부탁드릴게요."
남성은 내민 손이 무안하지 않게 바로 폰을 받아들고 싱긋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하실까봐 알려 드리려고 했습니다."
받아든 폰에는 '박문대'라는 세 글자와 함께 연락처가 담겨있었다. 박문대. 박민하는 이름을 되뇌이며 폰을 집어넣었다. 아이와 함께 지낸 이후, 처음으로 저장한 사적인 연락처였다.
*
(추후 포스타입에 내용을 추가하여 게시예정입니다.)





